기차이야기/기 차 역 ━

당신을 기다립니다. 경전선 앵남역 답사

반쪽날개 2008. 6. 30. 01:39
장맛비가 한바탕 퍼붓고간 주말.
그 주말도 거의 끝나갈 무렵,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비도 어느새 개었습니다.

오늘은 전부터 미뤄왔던 앵남역을 가기로 마음먹은 날.
비록 시간은 저녁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지만, 주섬주섬 가방을 꾸리고 집을 나섭니다.

오늘 출사는, 기차여행동호회 회원한분과 동행하였는데,
시간이 늦어 다른곳으로 가자는 회원분을 설득하여 결국 예정대로 이곳 앵남역까지 갑니다.
이자리를 빌어 바쁜시간을 쪼개어 동행해주신 회원분께 감사말씀 드립니다.

오늘 출사를 나가는 앵남역은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앵남역의 연혁은 다음과 같습니다.

1964년 9월 15일 : 역원배치간이역으로 영업 개시
1972년 7월 1일 : 을종대매소로 지정
1990년 12월 2일 :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
2006년 11월 1일 : 여객취급 중지, 전 열차 무정차 통과
2008년 1월 1일 : 폐역

연혁을 보시다시피, 앵남역은 2006년 11월 1일 열차 시간표 개편과 맞물려
역의 기능을 상실, 올해 초에는 결국 폐쇄조치 되어버린 역입니다.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그 이후의 앵남역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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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순부터 시작된 장마는 7월이 되어가는 지금, 한창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미 앵남역에 서는 열차는 없다.

그 때문일까.
이 동네에 살지 않으면서, 타지의 기차역을 가는데 버스를 이용할수밖에 없다.

비구름은 산 능선보다 낮게 깔려, 당장이라도 비를 뿌릴 기세다.

얼마를 걸었을까.
저 앞에 앵남 건널목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 건널목 바로 옆에는 앵남역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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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남역이 아직 현역에서 활동하던 시절.
역 바로 뒤에 위치한 이 조그마한 가게는, 기차를 탈 손님들이라면
한번씩은 거쳐갔을법한 그런 위치에 놓여있다.

실제로 앵남역에 기차가 서던 시절, 이 조그마한 가게는 역 대합실 역할을 했었다.

앵남슈퍼
이것이 이 조그마한 가게의 이름이다.
하지만, 앵남슈퍼라는 이름보다, 할머니집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있다.

기차를 기다리는동안 허기를 달래기 위해 손수 끓여주시던 라면.
그리고 푸짐한 반찬은 아니지만, 라면과 곁들여 먹을 수 있게 꺼내어주신 김치.
한때 이곳에서 남도의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열차가 더이상 서지 않는 지금.

이곳을 찾는사람은 뜸해지고, 그때 맛보았던 라면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기차를 기다리며 허기를 달래주던 라면맛은 이제 추억이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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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남역에는 기차를 타는사람들이 햇빛이나 비를 피할 수 있게 조그마한 공간이 마련되어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다른 큰 역들처럼 푹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쉴 수 있는 의자도 있다.

한때 이곳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휴식공간이 되어주었던 나무로된 의자.

사람의 발길이 끊긴지 1년이 지나가는 시점.
기차를 타기위해 이곳에 오는사람은 없다.
사람의 손길을 떠난 의자위에 수북히 쌓인 먼지가 애처롭기만 하다.

기차를 타는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길을 걷다가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이
이용했는지, 의자 하나는 먼지가 닦여있다.

이 의자는 이제 기차를 탈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그런 용도로 전락해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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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기차가 서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기차역도 아니다.

이곳이 한때 기차역이었다는 것을 다시한번 알려주려는 듯, 오래되보이는 행선판이 서있다.

동쪽으로는 화순, 서쪽으로는 남평역이 자리잡고 있다.

행선판은 아직 화순과 남평역을 기억해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화순역과 남평역의 기억속에서 앵남역은 지워진지 오래다.

40여년간을 함께 했던 주변의 역들.
변화하는 세월의 흐름속에서 앵남역에 대한 주변 역들의 기억은 지워졌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한번 자신의 존재를 떠올려주기를 바라는걸까?
안간임을 쓰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행선판이 조금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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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플랫폼은 점점 허물어져 간다.
그리고 그곳을 제집마냥 자리잡은 잡초들이 있다.

선로는 보수가 되고 침목도 어느새인가 콘크리트 침목으로 바뀌어있다.
하지만 앵남역 플랫폼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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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을 따라가면, 광주다.

아직 경전선이 도심외곽으로 이설 되기 전.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광주로 향했다.

남광주시장에 물건을 내다팔기 위해서.
소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통학이나 통근을 위해서.

저 곡선 너머에 있는 저마다의 사정을 일일이 들어주자면
하루라는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앵남역은 묻는다.
저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느냐고.

하지만 이제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들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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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용도를 잃어버린, 휴식공간과 역 명판.
이른아침이나 밤에 도착하는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을 위해 어둠을 쫒아주던 가로등이 있다.

열차가 서지 않게 된 이후,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가로등은
발 끝에서부터 서서히 붉게 녹이 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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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역 주변에는 이름모를 꽃이 핀다.
해마다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녀석들.

이미 기차가 서지 않게 된 앵남역 곁에서, 위로를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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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앵남역은, 그리워한다.
굽이굽이 이어져있는 저 선로위의 기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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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다니던 통근열차가 아닌, 비둘기호, 통일호가 앵남역에 서던 시절이 있다.
그녀석들이 앵남역에 도착하면 한바탕 전쟁을 치뤘을 앵남건널목.

앵남역의 플랫폼은 짧다.
그때문에 기차가 플랫폼에 다 들어가지 못한 채, 기관차가 건널목 중간에 서거나,
반대쪽 철교 위에 서야만, 승객들이 안전하게 플랫폼에 내릴 수 있다.

때문에 건널목 안내소 옆에 정지 표지판이 놓여있다.

기차가 건널목을 가로막고, 1분이라는 시간동안 멈춰있다 할지라도, 그 누구하나
기차를 원망하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에게 있어, 그 모습은 이미 생활의 일부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 모습은 더이상 볼 수 없다.
기차가 앵남역에 서지 않기 때문에 기차가 통과하고 나면 바로 차단기가 올라간다.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1분의 기다림은 이제 더이상 이곳에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정지표지판 역시 더이상 그 의미를 갖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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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기다렸을까.
건널목에 경보등이 울린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소리. 그리고 힘찬 기관차 엔진소리.

화물열차가 지나간다.

기적을 울린다. 하지만, 그것은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에게 주의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건널목을 건너려는 차량이나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려는 목적, 그 외의 목적은 없다.

앵남역은 침묵한다.
하지만 참을 수 있다. 이녀석은 원래 서지 않았던 열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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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여객열차도 지나간다.
무궁화호다.

비둘기, 통일호가 사라진 후, 순천까지가는 경전선의 최고등급이자, 유일한 열차는 무궁화호.

예전부터 부산에서 오는 열차는 앵남역에 서지 않았다.
원래 서지 않았기 때문에 기차가 그냥 지나가더라도 앵남역은 참을 수 있다.

그사이 기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앵남역을 지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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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동안 두대의 기차가 지나가고 앵남역에도 밤이 찾아왔다.

주변이 온통 산이라 어둠은 다른 곳 보다 빨리 찾아온다.
혼자 남겨진 밤은 길고 쓸쓸하기만 하다.

주변의 가로등은 환하게 불을 밝히지만, 유독 앵남역의 가로등만은 켜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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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앵남역에서 한숨 돌리며, 다른 곳에서의 이야기를 전해주던 기차가 다가온다.
순천으로가는 무궁화호다.

앵남역은 반갑게 이녀석을 맞아들인다.

하지만, 이녀석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앵남역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이녀석은 등을 돌린채 제 갈길을 가는데 급급하다.

화순역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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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무엇을 바꾸어가는걸까?

서럽다.
서럽게도 흐느낀다.

그 서러움이 비가되어 내리는 걸까?
어느새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플랫폼이며 선로를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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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무궁화호가 지나가버린 후, 곁에 있어주던 건널목의 안내원 아저씨도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여느때 처럼 혼자 밤을 지세워야한다.

혼자 밤을 지새우는 것은 힘들지 않다.

단지, 외톨이라는 현실이 힘들 뿐이다.
단 하나의 기차라도 나와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이게 앵남역의 속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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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앵남역을 뒤로한 채, 우리도 발길을 돌린다.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다.
쉽게 그칠 것 같지는 않다.


- - -

손바닥 가득 흘러 내리는 눈물
이 마음을 노래로 바람에 실어보내면
언젠가 당신에게 도착할까요?

끊어진 기억의 실을 더듬어 보아요

언젠가 당신과 만나고 싶다는 바램

가끔 함께했던 시간이 내 가슴을 애태우지만
당신이란 존재를 너무나 소중하다고 생각하니까
당신이란 존재를 마음 속에 소중히 품은 채
다시 만날날을 기다려요.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