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17일.
남북 철도연결이라는 새로운 역사가 쓰여졌습니다.
이미 몇번의 고배를 마신 남북 철도연결...
하지만 결국 5월 17일, 남측 열차는 경의선을 이용해 문산에서 개성까지, 북측열차는 동해선을 이용하여 금강산에서 제진역까지 시험운행에 성공함으로서 이제 한반도 내에서만이 아닌, 아시아 대륙 더 넓게는 유럽대륙까지 철도로 갈 수 있는 그런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남북 열차 시험운행까지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보면
2000년 7월 : 경의선 철도 연결 최초 합의 (제 1차 남북 장관급 회담)
2000년 9월 : 비무장지대 남측구간 경의선 철도·도로공사 착공
2000년 11월 ∼ 2002년 9월 : 남북관리구역설정, 공동 규칙 제정, 지뢰제거 착수
2001년 12월 : 경의선 철도, 남측구간 공사 완료
2002년 4월 :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최초 합의
2002년 9월 : 비무장지대내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2003년 6월 : 남북철도 궤도 연결행사 개최
2005년 12월 : 동해선 우리 측 철도구간 본선궤도 부설 완료
2007년 5월 :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 시험운행 일정 합의
2007년 5월 17일 :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 시험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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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험운행구간입니다. 경의선은 우리측 열차로, 동해선은 북측열차로 운행.
문산역에서 개성역까지 불과 27.3km, 금강산역에서 제진역까지는 25.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짧은 구간이지만, 그 짧은 구간이 연결되기 까지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경의선은, 1951년 6월 이후 약 56년만이며, 동해선은 1950년 9월 이후 약 57년만에 다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남측에서 운행하는 열차를 견인하는 기관차는 7435 특대형 디젤기관차.
아쉽게도 경의선구간 일부는 비전화 되어있어, 전기기관차가 들어갈 수 없지요.
본 기관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는 신장철씨.
열차에 탑승하였던 경의선 마지막 열차기관사 『한준기』씨는,
"내가 몰던 열차는 징용을 갔다가 고향을 찾아오던 사람들과
6·25로 피난오던 사람들로 객차나 화물차 지붕까지 차 있었죠"
라는 말로 과거를 회상하였고,
"경의선이 개통되면 내 손으로 직접 열차를 몰아
개성과 평양을 달려보고 싶습니다."
경의선 시험운행을 하는 소식을 접한 한준기씨는 흥분과 감동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제 개성까지 연결된 경의선 선로를 따라 열차는 문산역을 출발합니다.
도라산역 북단 통문을 지나, 비무장지대를 건너면 이제, 그곳은 같은 민족이 살지만 지금으로서는 들어갈 수 없는 북한땅입니다.
그렇게 통일의 염원을 담은 열차는 17일 오후 12시 18분.
비무장지대의 정적을 깨며, 군사분계선을 건넜습니다.
한편 북측 열차는, 동해선 북단 통문을 지나 제진역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때 시간 오후 12시 21분.
통일전망대에서 확인한 북측열차.
그리고 환호하는 사람들.
북측열차가 제진역 플랫폼으로 들어옵니다.
기관차번호 내연602호. 북측 기관사는 노근찬씨.
본 기관차의 모델은 M622로, 주로 북한,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구 공산권 국가와, 독일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1965년∼1980년까지 제작되었습니다. 디젤엔진을 사용하며, 최고속도는 100km/h, 2000마력의 견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측에서 가져온 본 객차 중에는, 김일성 주석이 직접 탑승하였던 객차도 편성되어있었습니다.
북측 열차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의 객차와는 사뭇 다른, 전형적인 동구권 국가의 분위기가 물씬 배어나는 모습.
우리쪽에서 화려한 행사를 준비한 문산역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북측에서 행사를 준비한 문산역의 분위기는 조촐하게 치뤄졌는데, 북측 사회자의 개회 선언에 이어, 남북 열차 시험 운행 사업경과 보고, 이용섭 건교부 장관과 김용삼 북한 철도상의 축하연설로 진행된 북측 공식 행사는 시작 15분만인 오전 10시 45분에 끝났습니다.
남측 대표단장인 이용섭 장관이 A4용지 4장분량의 축사를 통해 "민족의 대동맥을 잇는 역사적 순간" 이라며 의미를 부여했지만, 북측 김용삼 철도상은 A4용지 1장분량의 축하연설에, "남과 북의 철도를 하나로 연결하는 계기"라며 담담하게 평가했습니다.
그 대신, 김용삼 철도상은 열차 출발시간인 오전 11시 30분까지, 남은시간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웅담을 늘어놓는데 할애하였습니다.
오늘 하루. 그중에서도 불과 몇시간 이라는 짧은 행사를 하였지만, 분명 그것은 앞으로 있을 남북관계에서도 좋은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듯 하였습니다.
남측 기관사와, 북측 기관사의 맞잡은 손처럼, 이제 곧 50여년 전 그날처럼 남과 북이 자유로이 오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렇게 다시 북측열차는 동해선을 따라 북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개성을 향해 달렸던 우리측 열차도, 다시 남으로 내려옵니다.
임진강 평화의 다리를 건너 문산으로 향하는 열차.
이번 남북 철도연결이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6·25이후, 반세기 동안 끊어졌었던 남북한의 허리를 다시 이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의미이겠고, 남북의 열차가 군사 분계선을 다시 넘었다는 것이 군사적 긴장 완화 및 신뢰구축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남북의 육상 물류통로가 트였다는 의미도 있으며, 경의선은 개성공단의 물류를 담당, 동해선은 금강산 관광을 기대해보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가야할 길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군사분계선을 5월 17일 9시부터 17시까지만 임시 개방』하였기에, 이번 시험운행이 끝나고나면 언제 다시 열렸던 문이 다시 열릴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에 남북 군 당국 사이에 항구적인 군사 보장조치가 필요할테구요.
또한 정기운행 열차가 다니기 위해서, 북한 철도의 현대화 작업도 시급한 상황입니다. 이미 선로 노후화로인해 평균 25~40km/h로 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을 감안하면, 이 선로의 현대화 작업에 필요한 비용은 최소 3조원 이상. 그리고 일각에서는 납북자 송환없는 남북철도 연결은 당장 취소하라 라는 시위도 있어서, 아직 서로에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입니다.
여하튼, 이번 남북 철도연결로 인해, 많은 기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반도의 대동맥을 이어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그리고 남북간의 원활한 교류가 가능해짐으로서 한반도의 경제성장, 그리고 장기적인 시각으로 볼 때, 대륙 철도와의 연결까지. 그러한 대규모 계획의 첫 단추가 꿰어짐으로서 이제 남은건 남과 북이 힘을 합쳐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한반도의 꿈과 희망이 실현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사람과 음악
그래, 가보는거야~
남북철길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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