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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MDR-EX90 을 다시 영입하였습니다

반쪽날개 2013. 10. 15. 00:00

지금과는 달리, 한때는 묻지마 혹은 저가형 이어폰을 주력으로 쓰고 고가형 이어폰에 딱히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어폰에 3만원 이상 투자해본 적도 없고, 주변에 고가형 이어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접할 기회도 없었던지라,

이어폰이 소리만 잘나오면 되지... 라며 대충 아무거나 사서 듣고다녔습니다.

 

하지만, 6년 전 어느날, 친구녀석이 들고온 EX90을 접해보고 엄청난 충격에 빠지게 되었으니...

이전에 썼던 이어폰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균형잡힌 소리, 또렷하게 들리는 악기소리며 보컬 목소리는 말 그대로 충격을 넘어 멘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며,

비싼 이어폰이 무엇 때문에 비싼가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제 통장의 잔고도 함께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아마 당시 EX90 정가가 9만원 후반이었을겁니다... 생애 최초로 이어폰에 거금을 투자한다며, 결재할 때 많이 망설였던 기억이 납니다=_=;; )

 

EX90을 영입한 이후, 그동안 들었던 노래들이 전혀 다른 분위기로 들리는게, 어째서 사람들이 '소리'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고,

이때부터, 이어폰은 내가 원하는 소리가 나와야 좋은 이어폰이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본격적인 이어폰 지름질이 시작되었습니다...ㅜㅜ

 

EX90을 3년 정도 사용했을 때 쯤 후속모델인 EX300, 500이 출시되었고, 저는 EX90의 저음과 고음을 개선했다는 EX500을 구매하게 되는데,

EX500을 영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EX90이 단선되버리고, 수리할 겨를도 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

그 때문에 이어폰을 제외한 나머지 구성품만 덩그러니 남아 서랍속 한구석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EX90, EX500 이후로, 지름 스케일은 점점 커져갔고,

EX510, EX600, XBA-10, XBA-3을 거쳐, 소니 진동판 이어폰 끝판왕(!)이자 소니 이어폰 중 가장 고가인 EX1000을 영입하게 되고,

다행히도(?) EX1000의 소리에 무척 만족했는지, 6년간 끊임없이 이어져왔던 이어폰 지름질도 일단락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료를 찾으려 인터넷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문득 EX90 쿨매(...)가 보이더랍니다=_=;;;

 

나온지 7년이 다 되어가는 녀석이고, 그나마도 몇년 전에 단종되버린데다,

EX90은 이미테이션... 쉽게 말해 짝퉁(!)이 판치는 이어폰인지라, 보나마나 저것도 가품이겠지... 라며, 못본척 넘어가려 했으나 (...),

제품 실 사진을 보니... 정품삘(!)입니다=_=...

 

이미 한번 써봤던 제품이라 대강 정품과 가품을 구별하는 법은 알고 있고,

무엇보다 가격이 완전 착해서(...) 판매자에게 이러이러한 구도(!)로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하게 됩니다.

(...사진을 요청해도 의심을 해소할만한 퀄리티의 사진을 보내주는 판매자는 거의 못봤고, 이번 판매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_=;; )

 

다행히, 딱봐도 정품과 가품을 구별할 수 있는 부위가 사진에 찍혀있었고, 정확히 판별은 안되지만 나름 정품같이 보여 일단 구매를 하였습니다.

 

다음날 물건을 받고 여기저기 확인해보니, 다행히 정품이 맞더랍니다.

뜻하지 않은 기회에, 구하기 힘든 EX90 정품을 저렴한 가격에 다시 구하게 되었습니다..ㅜㅜ

(...물론 박스풀 제품이 아닌 이어폰만 단품으로 온지라 저렴한게 당연하겠지만요=_=; )

 

 

 

 

 

이번에 다시 영입하게 된 Sony MDR-EX90 입니다.

전 주인이 나름 아껴쓴건지 유닛 외형이 상당히 깨끗한 편입니다.

유닛의 알루미늄 부분이 의외로 찍힘에 약해, 험하게 쓰면 바로 티나거든요...

 

소리가 나오는 노즐부의 필터며 이어덕트도 파손없이 깨끗한 모습입니다.

(유닛 자체가 헤어라인 처리된 금속이다보니, 의외로 손때가 잘 묻어 박박 닦지 않는이상 지저분해 보입니다..ㅜㅜ)

 

 

 

 

 

EX90은, 소니의 이어폰 중 EX라인업 제품을 고급 제품군 (EX-Monitor)으로 분류하기 위해 만든 첫번째 이어폰이며,

MDR-CD900ST 스튜디오용 헤드폰을 베이스로 제작되었습니다. (여담으로, 모델명에 ST가 붙은 제품은 MDR-CD900ST와 MDR-EX800ST (7550) 두개 뿐입니다.)

당시 소니 이어폰 중에서도 가장 비싼가격에 판매된 이어폰이기도 하구요. (당시 정가가 거의 10만원 가까이 했습니다.)

 

스튜디오용 모니터링 이어폰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발표한 EX90은,

소니 이어폰 중 최초로 13.5mm 다이나믹 드라이브 진동판을 적용하였고, 역시 소니 최초의 반(半) 커널형 이어폰이기도 합니다.

 

헤어라인이 들어간 고급스러운 알루미늄 하우징, 편안하면서도 귀에 확실히 고정되는 착용감, 모니터링 이어폰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카랑카랑한 소리는,

그간 소니의 커널형 이어폰들의 저음이 너무 강해 음 밸런스가 무너진다는 평가를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고급형 라인업인 EX-Monitor 라인업을 EX90으로 시작한 이후,

EX300, 500, 700, 310, 510, 600, 800ST(7550), 1000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류의 EX-Monitor시리즈 이어폰을 양산해내게 되고,

특히, EX90의 후속작을 개발할 때, EX90의 완성도며 인기가 좋아 후속작 개발에 애먹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EX90으로 시작한 EX-Monitor 시리즈는 EX600, 1000까지 출시되었으며,

지금은 다른 메이저 제작사들과 마찬가지로, 밸런스드 아마추어 (BA)를 장착한 이어폰을 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EX-Monitor 시리즈의 시초이자 실험적 성향이 강한 EX90은, 이후 소니 MDR-EX Monitor 시리즈 이어폰들이 가야할 길을 제시해준 이어폰이자,

(퀄리아 시리즈를 제외한) 소니 이어폰들의 이미지를 좀 더 고급스럽게 만들어준 녀석으로, EX90은 아직도 유저들 사이에서 명기로 통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어폰 없이 케이스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는데, 이번에 EX90을 재영입 함에 따라, 다시 케이스에 이어폰을 넣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리도 좋지만, 외형이 잘 조각해놓은 예술작품처럼 멋진 모습인지라, 듣는 즐거움 뿐만 아니라 보는 즐거움도 쏠쏠하구요.

 

그러고보면 EX90은 자기 개성이 참 강한 녀석입니다.

좋게말하면 자기 색깔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이퀄라이저빨(!) x럽게 안먹는 녀석이랄까요.

(어차피 저야 Normal 음장(?)을 선호하는지라 상관없지만요.)

 

전체적인 생김새는 오픈형 이어폰에 가깝기 때문에, 이도 크기에 맞춰 실리콘 팁을 끼우지 않아도 귀에 확실히 고정되고,

그동안의 소니 이어폰들과 다르게 차가우면서도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참 인상적이며,

특히 실리콘 팁 크기에 따라 그 소리 성향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의 소리 취향에 맞춰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소팁은 보컬과 고음을 강조하고, 중팁은 베이스를 강조하면서 보컬과 살짝 거리를 두고, 대팁은 그루브한 사운드 효과를 내줍니다.)

 

물론, 이후에 발표한 고급형 EX-Monitor 제품군과 비교하면 해상도나 차음, 누음 쪽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보이긴 하지만,

모니터링 이어폰 답게 기본적인 해상력과 공간감은 갖추고 있기 때문에, 지금 들어도 참 좋은 소리를 들려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소리는 부드럽고 편안하며, 뭉친듯 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저음과 포근한(?)느낌의 고음은, 여성보컬, 어쿠스틱, 발라드곡에서 그 위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이녀석에게도 약점이 있으니...

EX90은 완전한 커널형 이어폰이 아니기 때문에, 차음성이 꽤 좋지 않고, 이어폰 뒷면의 큼지막한 에어덕트로 인한 소리샘(누음) 현상은 가히 예술(!)에 가깝습니다.

 

소리샘이 심해 도서관이나 조용한 곳에서는 사용이 힘들고, 심지어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볼륨을 올리면 옆사람과 음악 공유가 가능할 정도입니다=_=

그렇다고 누음을 막기 위해 에어덕트를 막아버리면 소리가 굉장히 답답해지기 때문에, 덕트를 막을 수도 없구요...

(...예전에 EX90을 현역으로 쓸 때는, 이런것 신경 안쓰고 민폐를 끼치고 다녔습니ㄷ...=_=;; )

 

그리고, 여느 소니 이어폰들이 그러하듯, 헤비메탈, 락 등의 하드코어 장르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우연찮은 기회에 EX90을 다시 영입하게 되었습니다.

 

몇년만에 다시 들어보았지만, 역시 명기답게 EX1000에 길들여질대로 길들여진 귀에도 꽤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주었고, 예전의 향수(!)에 빠져들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소팁을 끼우면 나름 EX1000 분위기도 나는게 참 신기한 녀석이더라구요.

물론 느낌은 비슷할지언정, 소리의 깨끗함이며 선명함은 EX1000보다 몇수 아래지만요.

 

다시 영입한 EX90 덕에, 그동안 주인없이 굴러다니던 케이스며 실리콘팁들 (실리콘팁은 후속모델과 호환안됩니다.), 매뉴얼이 다시 제 주인을 찾게 되었습니다.

EX1000의 소리가 전반적으로 좋긴 하지만, 그간 써본 이어폰들 중 EX90이나 500만큼 여성보컬을 잘 뽑아주는 녀석이 없었던걸 감안하면,

구매해놓고 관상용으로만 쓸 일은 없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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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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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1000 소리를 사람으로 치면, 밝고 차분하며 이것저것 챙겨주기를 좋아하는 아가씨 스타일이고,

EX90은, 발랄하고 활동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한 소녀 스타일이랄까요~.

물론 두 제품 모두 고운 소리~ 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구요.